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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빵 사!” 한마디에 담긴 정

현재 다니는 미국 회사에 입사하기 전, 나는 10여 년을 한인 의류 회사에서 일했다.그곳은 ‘포에버21(FOREVER 21)’이라는, 한때 전국에서 큰 인기를 끌던 한인 브랜드였다.   전성기 시절 포에버21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약 8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자라(ZARA), 망고(MANGO)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자,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인해 점차 무너졌다.     각 매장에 쏟아부은 투자는 온라인으로 전환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었고, ‘정크 패션’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면서 쉬인(SHEIN), 아소스(ASOS) 등 중국계 브랜드의 공세에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브랜드가 가장 빛나던 시절, 나 또한 그 안에서 함께하며 직원들 사이의 따뜻한 정과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누릴 수 있었다. 1년에 세 차례나 받았던 200% 보너스, 연말 선물 보따리, 회사 창립기념일마다 열리던 고기 파티와 경품 이벤트….   그 시절의 사내 문화는 직원들에 대한 애정과 사기를 북돋우려는 노력이 가득했다.   우리 팀은 멕시칸 직원을 포함해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었고, 그중 15명이 한인이었다. 칸막이 없이 한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점심시간이면 서로 음식을 나누고 숟가락 개수까지 알 만큼 가까워졌다.   오전 7시30분까지 출근해야 했던 우리 팀은 대부분 아침을 거르고 출근했지만, 누군가 정성껏 음식을 싸오면 5~10분 정도 다 함께 둘러앉아 아침을 나눴다. 배추전, 고추전, 깻잎전, 군고구마, 찐계란, 수제 빵, 찹쌀떡까지 연륜 있는 샘플사 언니들의 솜씨 덕분에 매번 푸짐한 식탁이 차려졌다.   우리 패턴사들은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하루씩 정해서 30여 개의 빵과 간식을 사오기도 했다. 당시 빵 값은 개당 1~2달러 정도 하던 때라 큰 부담이 아니었고,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더 컸다. 인기 메뉴는 베이글과 크림치즈, 곰보빵, 김치만두, 붕어빵, 프렌치토스트, 샌드위치 등 다양했다. 때로는 부지런을 떨며 한인타운에서 김밥, 떡, 떡볶이까지 사오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3~4번은 누군가가 돌아가며 아침을 준비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자연스럽게 ‘칭찬 → 축하 → “빵 사!”’가 문화처럼 굳어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언니, 요즘 피부 너무 좋다~” “아드님 결혼 날짜 잡았어요?” “따님 대학 잘 갔다면서요?” 이런 덕담이 오고 가면 이어지는 말은 거의 늘 같았다.“그럼 빵 사야지~!”   경조사가 많고 자랑거리도 많은 아줌마 15명이 함께하다 보니, 매번 누군가는 빵을 사야 했고, 우리는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정이 넘치고 먹는 인심이 좋았던, 지금도 그리운 그 시절이었다.   그 회사를 떠나 지금 근무하는 미국 회사에 오면서, 나는 그 따뜻한 문화가 아쉬웠다.   가벼운 농담 삼아 “도넛 사!(You should buy the donut!)”라고 말해봤지만, 미국 직원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인들처럼 축하할 일이 생기면 음식으로 나누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었던 것이다. 생일이면 매니저가 슈퍼마켓에서 사온 크림 가득한 케이크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코로나 이후 구조조정으로 팀원이 줄고 내가 팀장을 맡게 되었다. 팀원이 8명이라 부담도 적었기 때문에 어느 날 회사 근처에서 베이글을 사갔다. 직원들은 예상보다 훨씬 고마워 했고, 그것이 시작이 되었다.   이후로는 누가 먼저 시키지 않아도, 각자 돌아가며 음식을 사오게 되었다. 멕시칸 동료는 자신이 즐겨 찾는 빵집에서 전통 빵을, 미국인 동료는 SNS에서 유명한 도넛을 사왔다.   이제는 “빵 사!”라는 말 없이도, 다들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나누는 문화가 생겼다.   누군가 기쁜 소식을 전하면, 다 함께 축하해 주고 마음을 나눈다.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정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것. 국적과 문화는 달라도, 따뜻한 마음은 통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한 조각의 음식처럼 작고 소박할 수 있다는 것을. 이선경 / 수필가이아침에 보따리 회사 멕시칸 직원 사내 문화

202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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